새와 생명의 터 보전 활동의 배경

새와 생명의 터의 활동과 목표를 더욱 확실히 이해하기 위하여, 보전의 정의를 내리는 것이 필수적일텐데, 이는 보전이 우리의 활동을 결정 지으며 그 철학의 근간이 되기 때문이다.

종종 같은 목표를 지니고 동의어로 쓰이기도 하지만, 새와 생명의 터가 추구하는 보전 (conservation)은 “보존 (preservation)” 이나 “환경주의 (environmentalism)”와는 꽤 차이가 있다. 보존이 본질적으로 “있는 그대로 지키는 것”이고 환경주의는 “환경을 위한 운동” (이는 ‘보존’과 ‘보전’의 여러 접근 방법 중의 하나이다)으로 한정 지어질 수 있으나, 보전이라 함은 생태계 이해를 최우선으로 하며, 자연 자원의 지속가능하고도 공평한 이용에 중점을 두는 것이다.

보전은 실현 가능하고 효율적인 관리 전략과 계획을 통해 효력을 발휘하며, 자원의 가장 현명한 이용임을 확고히 하는데, 종종 “이용하지 않음”을 너머 “현명한 이용”임을 강조한다.

새와 생명의 터가 추구하는 현명한 이용이란 “자연 자원의 근원이 생산해내는 이익을 바탕으로 하는 생활”로 이해될 수 있다.

이는 자연 자원의 근원을 좀먹고 퇴화시키는 비지속적인 (무분별한) 이용과는 사뭇 다르다. 자연 자원의 근원 (생물체와 무생물, 생태계, 그들의 조합과 상호작용으로 파생되는 생산물과 문화 등의 총체)은 물, 산림, 대기, 태양광선, 그리고 정제되지 않은 천연 상태의 화석 연료 등을 포함한다. 종교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자원의 근원이란 “신의 창조물”로 더 단순히 이해될 수도 있겠다. 영적인 관점으로는 “생명과 그 생명의 감각으로 이어진 만상”으로 또 다르게는 “본래의 자연과 물리적인 생명을 지탱해가는 데 필수적인 모든 것”이 자연 자원일 수 있다.

대부분의 현대 산업과 농업 개발은 자원의 근원과 생태계를 지탱하는 자생력을 황폐화시키거나 고갈시키기 일쑤이다.
예를 들어:

  • 습지의 가치를 이용하며 살기 보다는 습지를 ‘매립’ (생산성이 풍부한 강 하구, 얕은 바다, 범람원 등의 습지를, 상대적으로 빈약한 경작지 또는 “값싼” 산업 단지 등으로 변경)하는 경우

  • 산림이 소생하는 시간을 주지 않는 급속한 벌채는 산림에 서식하는 생물종에게 손상을 입히며, 산림의 자연적 기능도 소실 된다.

  • 자연적으로 보충될 시간을 주지 않는 수자원 추출

  • 소수 개체군을 지닌 동.식물 종의 ‘채취’

  • 유전자 변형 작물 ‘개발’은 자연적으로 생겨날 종의 감소를 가져온다.

비지속적 (무분별한)인 자연 자원의 사용이라 함은 대지의 재생 가능 시간 내에 (다시 흡수하여 ‘재생’ 할), 생산력의 한계 이상으로 소비하고 황폐화시키는 것으로 간단히 말할 수 있다.

무분별한 사용이 단기간의 이익과 소수에게 그 혜택을 가져왔다고 하더라도, 다수에게는 오랜 시간이 지난 후, 생물종 멸종, 사막화, 토양과 물 공기의 황폐화, 환경 오염, 가난과 기근, 질병 확산과 전쟁까지 야기시킬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새와 생명의 터의 보전활동은 이러한 비지속적이고 비효율적인 자원의 사용에 이의를 제기한다. 무분별한 사용과 지속적인 자원 사용은 많은 형태가 있고, 보전은 다른 종과 생태계에, 그리고 미래 세대에 대한 도덕적 책임을 지니고 실용적이며, 과학적으로 상황에 맞게 작업 해야 한다.

그 작업 최상의 지식과 최상의 가치에 근거를 둠이 필요하다.

그러므로 어떤 경우에 있어서 현명한 이용이란 특정한 지역이나 자원의 이용을 (야생 또는 위기종의 개체수 유지를 위해 완전히 소생되도록) 금지 하는 것일 수도 있고, 다른 경우에는 사용을 제한 하거나 한정 짓는 (한 지역을 농경지, 관광 지역, 자연 보전지 등으로 나누어 활용함) 방법으로, 또 다른 경우는 더 효율적이고 덜 낭비적인 방식으로, 단순히 자연 자원의 사용 패턴을 달리하는 것이다.

새와 생명의 터에게 있어 한 종이나 주요 지역의 지속적이며 공평한 이용이라 함은 직접적인 소비나 개발보다는 교육과 레크리에이션의 용도로 (‘re-creation’이 재창조를 의미하듯, 그 자체와 주변과의 심오한 가치와 깊은 결합관계를 재발견함을 의미한다) 활용함을 뜻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므로 새와 생명의 터는 조류 수렵보다는 탐조를, 고래잡이 보다는 고래 관찰을, 습지를 농경지와 산업지로 변환하기 보다는 자연적 습지를 유지하도록 권장하는 것이다.

새와 생명의 터는 모든 개발을 반대하지 않는다. 악 개발을 반대하는 것이다.

우리가 인지하는 보전은 광범위한 영역에서의 대처를 필요로 하며, 특히 인구밀도가 높은 지역에서는 보존만 하기 보다는 근본적인 문제 해결을 위한 보다 현실적인 접근방식을 제시하는 것이라 믿는다.

보전은 타인과 타생물종의 요구를 존중하는 것과 장기적 공동 목표의 인식과 생명 조건의 유지에 기초한다.

그렇기에 보전은 현재 미래를 위한 정신을 지닌 생명과 삶을 위한 길잡이이다.

이렇게 보전은 장기적인 안목을 요하며 단일 사안이나 한 지역에만 국한되지 않는, 전 생태계의 관리 및 보전에 힘써야 한다. 생물종들은 이동을 하고, 하천을 흘러가게 마련인데, 단일 지역만의 보전은 의미가 있을까? 시간이 흐르면서 생물종은 감소하고 그 지역으로 흘러드는 하천은 점차 황폐화될 것이다. 그 지역 자체는 가치를 잃고 심지어 그 기능까지도 잃게 될 수도 있다. 이러한 이유로 인해, 보전활동을 단일 이슈에 반대하는 단순한 저항시위로 국한하는 것은 매우 비효율적이다.

보전 요구는

  • 분노 보다는 식견

  • 반대 보다는 교육

  • 저항 시위보다는 대안이나 정책 제시로 대신할 수 있어야 한다.

새와 생명의 터는 물론, 보전주의자들은 이해 당사자 (시민, 토지소유주, 개발업자, 정책 결정자들)들이 무분별한 개발로 가난해지고 소외되도록 하기 보다는, 보전을 통하여 인간과 다른 종들이 현재와 미래에 받을 혜택과 삶을 인식하도록 장려하고 도와야 한다.

보전의 명확한 의미를 이해하는 것, ‘현명한 이용 선언’은 우리 활동의 틀을 잡는 것이다. 새와 생명의 터는 모든 개발 사업의 반대에 몰두하는 저항 단체가 아니며, 과학적 사실과 전략을 이용하고, 합의와 “상식”으로 선택을 이끌어내도록 안내하는 단체이다.

새와 생명의 터는 지역적, 국가적, 국제적 수준의 관계 구축을 위해 활동한다. 그러한 관계를 통해 다수에게 유익한 최선책을 모색할 수 있으며, 우리 인간과 다른 종들에게, 현재와 미래에 까지 미칠 책임감 있는 접근과 과학적 의견을 지원하며 주장한다.

명백히 조류와 서식지 보전에 치중 한다 할지라도, 동물권, 채식주의, 유기농, 에너지와 자원소비 절약, 그리고 현 산업과 농경 개발 모형을 대신할 수 있는 기타의 총체적인 대안 등도 우리는 당연히 지원한다.